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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인터뷰] 삿포로 김민태 "처음엔 가기 싫었지만... '모치카타'에 일본행 택했죠"
kwfm  |  seoch9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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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30  20: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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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스=삿포로 / 글 서창환 미디어영상 13', 사진 KFA, J리그 홈페이지, 서창환]

자기계발 베스트셀러 <꿈꾸는 다락방>의 이지성 저자는 'R=VD(Realization=Vivid Dream)를 강조한다. 꿈이 이뤄질 거라는 확신을 갖고 목표에 정진하면 현실로 이뤄진다는 얘기다. 미드필더 김민태(23, 콘사도레 삿포로)도 이 공식을 되뇌고 있다.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말이다.

마음 고쳐먹은 베갈타 센다이 행

   
 

 신일초-능곡중-부평고를 거친 김민태는 2012년 광운대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 입은 피로 골절 때문에 바로 주전으로 뛰진 못했다. 김민태는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었지만 (이)후권이형(성남FC), (김)남춘이형(상주상무) 같은 선배들이 위로해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며 동료들의 도움으로 슬럼프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김민태는 이후 주전 미드필더로 기용돼 중원의 한 축을 책임졌다. 3학년이던 2014년, 광운대의 사상 첫 U리그 왕중왕전 우승에 힘을 보태며 방점도 찍었다. 국내외 프로팀들은 정상급 미드필더로 발돋움 한 그를 앞다투어 데려가려 했다. 이중 J1리그 소속 베갈타 센다이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인프라가 뛰어난 일본으로부터 러브콜이 왔으나 정작 김민태는 일본행에 소극적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를 떠올린 그는 "국내 유망주가 일본에 많이 진출했던 시기였다. 대부분 실패를 맛보고 국내로 돌아오는 일이 많아서 일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분위기라도 한 번 느끼고 오라"는 주위의 조언을 들은 김민태는 마지못해 일본으로 테스트를 보러 갔다.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센다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곧 일본 축구 특유의 세밀함에 푹 빠져들었다.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 고쳐주고 알려주더라.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볼을 잡아두는 방법을 '모치카타'라고 부른다. 미드필더가 볼을 다루는 방법을 자세히 분류해서 알려준다. 그때부터 센다이에 입단하기로 마음먹었다."

부상 이겨내고 J1에 안착하다

 

   
 

2014년 말 센다이 입단을 확정지은 김민태는 동계훈련을 앞두고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몸을 만들지 못했다. 하루빨리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겼지만 대학 시절 슬럼프를 극복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차분히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김민태는 2015년 5월 리그 강호 우라와레즈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개막 후 5연패에 빠진 센다이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그를 선발 출전시켰고, 기다렸다는 듯이 김민태는 데뷔골을 넣으며 종횡무진 맹활약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데뷔전 이후 김민태는 리그에서 6경기 연속 출장, 3골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시즌이 끝나고 그가 받아든 성적표는 17경기 4골. 시즌 초 부상 공백을 감안하면 성공적으로 J리그에 안착했던 그다.

18명이 아닌 19명이 뛴 리우올림픽

   
 

김민태는 지난해 브라질 리우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돼 조별리그 2경기(피지, 멕시코)를 소화했다. 사실, 그는 올림픽 발표 당시 예비 명단으로 분류돼 브라질행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송주훈(알비렉스 니가타)이 대회를 앞두고 발가락 골절로 낙마하면서 극적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

생애 단 한 번뿐인 올림픽을 뛸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다친 동료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송주훈이 먼저 김민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주훈이가 '네가 대신 가는 거래서 마음이 놓인다'며 격려해줬다. 주훈이의 탈락으로 올림픽을 가는 애매한 입장이 됐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19명이(송주훈을 포함한) 같이 뛴다고 생각했다."

아쉽게 올림픽을 가지 못한 친구를 위해 김민태는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골 세리머니로 송주훈의 유니폼을 펼쳐 보이자는 것이었다. 독일전 황희찬의 선제골 세리머니에서 송주훈의 유니폼이 등장한 것도 그런 이유다.

"원래는 피지전 때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깜빡하고 숙소에서 주훈이 유니폼을 놔두고 와서 다음 경기인 독일전에 주훈이를 위한 세리머니를 했다. 그래도 약팀인 피지보다 강팀인 독일을 상대로 펼친 세리머니였기에 결과적으로 더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웃음)."

삿포로에서 재기를 노리다

 

   
 

리우올림픽을 마치고 센다이로 돌아온 김민태에겐 뛸 자리가 없었다. 대회 기간 공백으로 팀내 주전 경쟁에서 뒤처졌기 때문이다. 김민태도 "2016년은 올림픽에 너무 신경 썼다. 소속팀에서 입지를 튼튼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그는 삿포로로 둥지를 옮겼다. 올림픽 동료 구성윤(GK)의 존재도 한몫했다. 심기일전한 그는 올 시즌 개막전을 시작으로 10경기 연속 선발 출전해 순조롭게 적응했다. 수확도 있었다. 소속팀이 스리백을 사용해 센터백으로도 경기에 나서며 멀티 자원으로서의 존재감을 뽐냈다.

하지만 7월 초 발목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는 악재가 찾아왔다. 잘나가는 시점에서 다친 부상이라 꽤 속상하고 억울했다. 김민태는 "발목 부상 이후 컨디션이 많이 떨어졌다. 이제 막 복귀한 만큼 하루빨리 컨디션을 회복해 다시 주전 자리를 되찾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인터뷰 내내 김민태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새겼다. 해외 프로 생활부터 올림픽 출전까지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지만, 아직 만족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고등학교 시절 교류전으로 다녀온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레알 마드리드 홈구장) 잔디를 다시 밟고 싶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 번 꼭 뛰고 싶다. 남들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하지만 꿈은 크게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최대한 목표치에 가까워지지 않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면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물론 그만큼 더 노력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꿈으로만 여겼던 레알 입단에도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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