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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씨네어제가 오늘의 나를 지배한다고 느낄 때 『클레어의 카메라』
조일남 기자  |  ajtwlsdlfska@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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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30  22: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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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씨네는 예술영화관 아트나인과 카카오 브런치의 영화 리뷰어로 활동 중인 기자가 시사회로 미리 접한  작품 중 하나를 추천해 드리는 코너입니다. 대만의 영화감독 차이 밍량은 세상의 운명을 걱정하는 영화는 상업영화,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영화다란 말을 남겼습니다. 펭귄씨네는 나의 내일을 걱정함과 동시에 주변의 이웃과 낯선 타인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영화들을 비교적 쉽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칸 영화제 행사로 프랑스에 출장을 간 만희(김민희)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란 이유로 사장인 양혜(장미희)로부터 해고를 통보 받는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친구를 따라 칸으로 온 클레어(이자벨 위페르)는 폴라로이드 사진기 하나만을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한 순간 직장을 잃은 만희는 복잡한 심경을 안고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데, 우연히 그녀 주변을 지나치게 된 클레어는 만희의 공허한 표정에 매료돼 그녀를 촬영하기 시작한다. 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급격히 친해지고, 서로의 과거에 대한 이야길 나누다, 최근까지 서로가 가까운 장소에 있었으며 같은 사람들을 만나 왔던 걸 인지한다. 기묘한 인연에 신기해하며 더욱 친해진 두 사람은 이제 칸의 밤거리를 함께 걷기 시작한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홍상수 감독의 스무 번째 장편영화이자, 지난해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 *스페셜 스크리닝에 초청된 작품이다. 이미 2016년 하반기에 완성됐으며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에 먼저 개봉됐기에 국내에는 조금 늦게 공개된 편이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영화가 실제 칸 영화제 기간 동안 만들어졌단 사실이다. 언제나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그려내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세계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과, 작품이 영화의 도시인 칸에서 촬영됐기에, 영화란 예술 자체에 관한 감독의 질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최근 홍상수 감독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에 대한 그의 감각적 인식과 재현이다. 홍상수 감독은 과거·현재·미래가 선형적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마치 둥근 원과 같은 모양으로 공존하고 있음을 믿는 사람이다. 시간의 동시성에 대한 그의 믿음은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한 그의 영화형식으로 발현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개봉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과거의 어떤 사건들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매 순간 다짐한다.

이런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대변하듯, 영화의 서사는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채로 배열돼 있으며, 과거에 타인에게 들었던 말들이 맥락 없이 나타나 관객에게 마치 환청이 들리는 것 같은 기묘한 감정을 전해 준다. 관객들은 각자 나름의 기준을 안고 영화의 시간적 순서나 맥락을 이리저리 조립해 보지만 결코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될 수 없기에, 이런 관점으로 클레어의 카메라에 다가간다면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시간에 관한 형식적 실험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특히 클레어가 사용하는 카메라가 이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카메라는 눈앞의 사라져 가는 순간들을 영구적으로 담는 도구이고, 그 중 폴라로이드는 가장 빨리 이를 현실에 재현해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얘기했듯 사진은 촬영자가 바라본 시간의 기록임과 동시에, 그 순간 자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도구다. 말하자면 현실은 매 순간 과거로 이행하며, 인간의 삶은 과거로부터 탈피한 뒤 곧장 다시 과거로 종속되고야 마는 일련의 흐름 속에 놓여있는 셈이다. 이런 시간에 관한 홍상수 감독의 철학적 사유는 나는 누군가의 사진을 찍고 나면 그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돼있다는 걸 안다란 극 중 클레어의 대사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겁니다어떤 이유로 사진을 찍냐는 만희의 질문에 클레어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 말을 들은 만희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의 해고 사유를 찾아, 천천히 스스로의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클레어 또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사진을 찍게 된 진짜 이유를 만희에게 고백한다. 어쩌면 클레어의 카메라는 타인의 오늘을 긍정해줌과 동시에 스스로의 과거를 돌아보고 이를 희망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홍상수 감독의 개인적 욕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비발디 사계 중 겨울이 영화의 배경음으로 반복해서 쓰였듯, 내면의 봄도 추운 겨울을 버텨내야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 그는 믿는 것일까. 그 믿음이 타당한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몫으로 남겠지만 말이다. 영화란 어디까지나 결국 대중의 예술이다. 지난 25일 개봉. 15세 관람가.

*스페셜 스크리닝: 비교적 인지도 낮지만 실력 있는 감독들이나 신인 감독의 작품을 선정하는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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