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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人 VS 광운人선의의 거짓말 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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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2  01: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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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로부터 시작된 거짓말은 타당하다

최예원 (경영·17)

우리는 살면서 여러 위기에 봉착한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은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해도 괜찮을까?’, ‘만약 상대방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크게 곤란해지거나 상처 받을 것 같은데 내가 이 사실을 그대로 알리는 것이 옳은 것일까?’ 살면서 우리는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때 수많은 고민을 한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다. 지금까지 살면서 과연 거짓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모범생이라 불리는 이들조차도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짓말이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선의의 거짓말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으며 타당하다고 본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거짓말은 상대를 속이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몸이 아프더라도 상대방이 많이 걱정할 것을 염려해 걱정을 덜기 위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경우도 상대를 속였기에 잘못된 행동이라고 단정지어도 될까?
나는 ‘플라시보 효과’를 통해 이 타당성을 설명해보려 한다. ‘플라시보 효과’란, 의사가 약효가 없는 가짜 약 혹은 꾸며낸 치료법을 환자에게 제안했을 때, 환자의 의사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으로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심리적인 요인을 이용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이다.
약효가 없는데 약효가 있다며 환자에게 약을 제안한 것은 분명 거짓된 행동이다. 환자는 의사의 선의의 거짓말에서 호전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졌으며 결국 완치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플라시보’라는 단어는 ‘즐겁게 하다’, ‘기쁨을 주다’의 라틴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거짓된 것일지라도, 선한 의도로 상대방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줬다면 이러한 거짓말은 결코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취과 의사 헨리 비처는 2차 세계대전 때 의무병으로 참전했다. 전쟁터에서 많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중 강력한 진통제인 모르핀이 부족하게 되자 그는 진통이 심한 부상자들에게 모르핀을 놔주겠다 말하고 실제로는 생리식염수를 주사했다. 놀랍게도 상당수의 병사들은 ‘가짜약’인 생리식염수를 통해 통증이 호전되는 현상을 보였다.
선의에서 시작된 거짓말은 도덕적으로 옳고 충분히 타당하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우는 거짓말을 불공정하게 이용해 타인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갈취하여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개인의 편익을 위해 부당하게 거짓말을 악용하는 경우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본인의 편익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선의에 의해 도출된 거짓말은 도덕적으로 옳고 타당하다고 하기에 충분하다.


상황 회피를 통한 무책임한 자기만족

안종호 (건축·18)
미국 심리학자 제럴드 제리슨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약 200번, 8분에 한번 꼴로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의 생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남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나쁜 거짓말이 아닌, 남을 위한 거짓말이 있다. 바로 선의의 거짓말이다.
선의란 좋은 뜻, 좋은 마음을 의미한다. 즉, 선의의 거짓말이란 것은 좋은 의도로 하는 거짓말이다. 투병 중인 시한부 환자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외모에 관심이 많은 비만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한 무대를 마친 친구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처음 가본 식당 형편없는 요리사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하는 거짓말을, 사람들은 선의의 거짓말이라 한다.
난 선의의 거짓말에 반대한다. 투병 중인 시한부 환자에게 남은 1개월의 시간을 배려라는 이유로 사실을 숨긴다면 그 환자는 마음을 정리하거나, 가족 또는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거나,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플라시보 효과를 예를 들며, 선의의 거짓말로 실제 치유되는 사람들이 있음에 선의의 거짓말에 찬성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30% 미만이며 그게 거짓임을 환자가 알 경우 오히려 어떤 약을 처방해도 믿지 못하게 되는 노시보 효과를 받을 수 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비만인 아이가 선의의 거짓말을 듣게 되면, 당장은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높아 질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자신의 외모가 출중해지길 원하는 아이라면 나중에 진실을 들었을 때,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고 어울리는 화장품이나,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조언을 해주는 게 미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대를 마친 친구는 발전이 없을 것이며 형편없는 요리사는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실력 향상에 힘을 쏟지 않을 것이다.
물론 꼭 그럴 것이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변수는 항상 발생할 수 있기에, 저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선의의 거짓말은 무책임한 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얼 할 때 그것이 ‘득’이 될 지 ‘실’이 될 지 알 수 없다면 안하는 게 맞다.
내 의도가 긍정적이고, 상대방을 위한 행위였다고 해서 정당하게 보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닐까? 당장 그 사람의 눈을 가리고 기분을 돋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후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내가 좋은 뜻으로 한 거짓말에 누군가의 마지막 기회가, 건강이, 발전이, 심지어 생계가 위험해 질지라도 “좋은 뜻”이란 단어 뒤에 숨으면 그만이다.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선의의 거짓말은 결국 포장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결국 언젠간 마주칠 불행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게 하는 것이다. 내가 무슨 권리로, 상대의 진실을 알 권리를 침해한단 것인가? 진실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사실이라도 결국 받아들여야 하는게 세상이다. 당장 행복한 바보가 될 것인가, 일찍이 마주한 불행을 딛는 사회인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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