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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이 불분명한 세계에서 이스트우드가 취한 삶의 태도, 『라스트 미션』밤비씨네
최승현 기자  |  shc@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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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2  02: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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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돌아왔다. 미국 서부극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영화 인생은 어느덧 숱한 세월이 흘렀다. 그는 감독과 배우를 병행하며 아흔 살을 넘겼다. 이 놀라운 영화적 의지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의 작품을 끝까지 지켜보며 그와 함께 늙어가는 것만이 그의 영화적 인생을 이해하는 우리의 최선일 것이다.
『라스트 미션』은 ‘뉴욕타임즈’에 실렸던 미국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87세 원예사 얼(클린트 이스트우드)은 가족과 서먹서먹하다. 딸과의 대화가 끊어진 지도 오래다. 그는 평생 밖에서 떠돌아다녔고 가족은 그를 원망한다. 얼의 아내는 “단 한 번도 가장 노릇을 하지 못했다”며 얼을 나무라지만 그는 가족을 “뒷바라지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죄책감을 무마한다. 실은 얼도 알고 있다. 자신이 형편없는 가장이라는 사실을. 얼은 가족에게 용서와 화해를 구하기로 뒤늦게 다짐한다. 늙은 얼이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다. 그는 멕시코 갱단의 마약 운반원을 자청하며 낡은 트럭의 핸들을 부여잡는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라스트 미션』에 대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이 영화”라고 말했다. 적확한 표현이다.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하는 얼의 육신은 그가 살아온 세월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의 몸에 새겨진 실핏줄은 선연하고 몸에 기록된 주름은 하나의 길처럼 깊고 선명하다. 단단했던 *전완근은 어느새 누그러졌다. 이스트우드의 지난 세월을 지켜본 관객이라면 느슨해진 그의 몸에서 지난 **필모그래피가 아른거렸을 것이다. 얼은 세월의 흔적을 문신처럼 몸에 새겼다.
얼이 지닌 물건에도 세월이 묻어있다. 얼이 입는 옷들은 그의 피부처럼 주름이 쌓였고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41개 주를 횡단한 그의 트럭은 이제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그는 잡음이 끼는 오디오로 컨트리 음악을 들으며 군용품인 스탠리 보온병으로 커피를 마신다. 이는 모두 세월의 잔 때가 묻은 빛바래진 시간의 조각들이다. 이것은 얼이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을 환기시키는 슬픈 흔적들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다.
이스트우드가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은 흥미롭다. 영화의 서사는 마약을 밀매하는 멕시코 갱단과 마약 단속국 경찰의 대립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이뤄지지만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이스트우드는 선과 악을 해체하고, 선과 악의 무경계, 그 회색 속으로 관객들을 이끌고 간다. 얼이라는 인물 자체가 그렇다. 얼은 선과 악이 뒤섞인 불균질한 존재이다. 원예사인 얼은 손녀의 약혼식에서 만난 사람의 권유로 우연찮게 마약 운반원이 됐지만 그렇게 벌은 돈으로 그동안 해주지 못했던 가족의 학비를 보태주거나 어려움에 처한 주변 이웃을 돕는다. 얼은 악한 과정으로부터 선한 결과를 빚어냈다. 현실적 타협이다. 선한 과정으로부터 선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 미국의 모습은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 세계이다. 얼은 같이 일하던 멕시코 갱단의 일원에게 마약을 밀매하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한다. 얼의 조언을 들은 멕시코인은 이렇게 반박한다. 갱단이 나의 가족이고 친구이자 나를 유일하게 아껴준 사람들이라고. 이때 영화의 초점은, 그들의 범죄 행위에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환경에 맞춰진다. 그들에게 마약 밀매는 그들의 밥벌이고 어쩌면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영화가 경찰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날카롭다. 영화 중반에 경찰은 얼을 잡기 위해 지나가는 차량을 멈춰 세우고 검문을 시도한다. 그러나 차량의 주인은 얼이 아닌 행인이었고 붙잡힌 행인은 경찰에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한다. 행인의 말은, 차량 검문 도중에 경찰에 의해서 죽은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 속 묘사는 미국 경찰 공권력의 폭력성을 제대로 꼬집는다. 영화를 보며 관객은 묻게 된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이스트우드는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인간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사회는 어떤 형태인가.
선과 악이 불분명한 이 세계에서 이스트우드가 취한 삶의 태도는 특별하지 않다. 그는 언제나 삶의 거창함이 아닌 삶의 소박함을 말해왔다. 그것은 자신의 무지를 인지하고, 용서와 화해를 몸에 지니고, 관용을 베풀고,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을 아끼고, 주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스트우드에게 삶은 소박하고 느린 전진만이 최선이다. 그것은 마치 트럭 운전사의 삶과 같다. 끝없는 도로를 한없이 질주하는 일이다. 이스트우드는 오로지 하나의 길을 간다. 소박함, 단순함, 올곧음, 완고함, 그 직진하는 삶이 이스트우드 영화의 힘이고 의지다.
15세 관람가, 지난달 14일 개봉.

*전완근: 팔꿈치 아래부터 손목까지의 근육을 의미한다.
**필모그래피: 감독, 배우, 제작자 등 영화 관계자들이 찍었던 영화 작품 목록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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