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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김윤석이 그린 가부장의 반성과 여성의 연대밤비씨네
최승현 기자  |  shc@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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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9  10: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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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출신의 감독, 김윤석의 재발견
“김윤석이 만든 영화였어?”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자 관객이 했던 말이다. 우리가 아는 그 김윤석이 맞다. 『추격자』, 『황해』, 『1987』과 같은 작품에서 수컷 냄새를 물씬 풍기던 배우. 마초 성향이 다분한 역할과 무자비한 악역을 오가며 매번 강렬한 캐릭터로 스크린을 장악하던 김윤석이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성년』은 감독 김윤석의 첫 연출작이다. 이 사실을 믿기 어려운 이유는 영화의 성격이 그의 기존 이미지와 상반되기 때문이다. 『미성년』은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다. 베테랑 배우 염정아, 김소진과 신예 배우 김혜준, 박세진의 연기가 자아내는 리드미컬한 호흡은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진귀한 앙상블이다. 여성 캐릭터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연기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미성년』은 한국 영화계의 오아시스 같은 작품이다. 여성 캐릭터들을 잘 버무리는 것만으로도 영화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미성년』은 증명한다. 유머와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영화에서 웃음과 눈물을 참기란 어렵다.
가부장의 반성과 여성의 연대
같은 학교 고등학생 2학년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는 서로가 밉다. 주리의 아빠 ‘대원’(김윤석)과 윤아의 엄마 ‘미희’(김소진)가 불륜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주리와 윤아는 서로의 부모를 탓하면서 매번 학교에서 싸운다. 윤아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주리의 엄마 ‘영주’(염정아)도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한 불륜이 아니라 미희가 대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해진다. 주리와 윤아, 영주와 미희의 갈등이 극도로 치달으며 두 가족 모두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된다.
『미성년』에서 흥미로운 것은 가부장의 반성과 여성의 연대가 그려진다는 점이다. 중년 남성이자 가부장의 위치에 있는 김윤석은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가부장을 바라본다. ‘대원’이라는 인물 자체가 가부장을 대표한다. 이름은 군부대나 집단의 구성원에서 따온 것이고, 영화 속 대원의 모습은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옆모습과 뒷모습이 주로 등장하고 클로즈업은 거의 없다. 대원은 철저하게 익명성을 띤 인물인 것이다.
대원은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다. 가족에게 불륜 사실을 들키고 문제가 커지자 대원은 지방으로 도망가 버린다. 한편 미희는 대원의 아이를 조산하고 후유증으로 병실에 홀로 누워있다. 대원은 미희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않는다. 오히려 대원은 미희에게 “아내와 딸 때문에 힘들다”며 전화로 자신의 고충을 늘어놓는다. 결국 대원은 지방에서 만난 불량 청소년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다. 무능한 가부장에 대한 처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반면 영화 속에서 여성의 연대는 돋보인다. 영주는 자신의 가정을 해친 미희와 윤아를 미워하기보다 그들이 감당하고 있는 슬픔을 지지하려고 노력한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엄마의 출산 비용을 마련한 윤아에게 영주는 “흔들리면 안 돼”라고 말하고, 나중에는 병실에 누워있는 미희를 찾아가 따뜻한 죽을 함께 나눠 먹는다. 어쩌면 영주는 같은 여성으로서 미희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미희는 고등학생 때 윤아를 낳았고 홀로 윤아를 키워왔다. 윤아의 아빠 역시 미희와 윤아를 버리고 집을 나온 무책임한 가부장이었던 것이다.
영화 속 여성들은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삶을 함께 버텨나간다. 『미성년』은 가부장 사회를 반성하고 성찰함으로써 여성의 삶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당혹스러운 결말, 아이들이 죽음을 새기는 방식(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결말에 이르면 미희의 아기는 숨을 거둔다. 조산으로 태어난 아기는 뇌출혈이 있었고 숨은 불안정했다. 아기의 시신은 화장된다. 아기는 고운 가루가 돼 물질로서 생에 남는다. 아기의 유골은 주리와 윤아에게 주어진다. 유골을 처리하는 일은 이제 아이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유골을 납골당에 보관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유골을 처리하는 방식은 조금 당혹스럽다. 아이들이 택한 방법은 놀랍게도 딸기우유와 초코우유에 유골을 함께 넣어서 마셔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머리의 기억을 신뢰하지 않고 몸의 기록을 믿는다. “난 나를 믿지 않아. 대신 안 까먹는 법은 알아”라고 주리는 말한다. 1년에 한 번 묘지를 갈까 말까 하는 어른들처럼 게으른 방식으로 죽음을 기억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죽음을 기꺼이 마신다. 죽음이 살아있는 몸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삶이 죽음을 품는 기적이다. 삶과 죽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삶과 죽음을 한 몸에 끌어안는다는 점에서 아이들이 죽음을 새기는 방식은 당혹스럽기보다 경이롭다. 우리의 일은 그런 아이들을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 『미성년』이 진짜 의미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15세 관람가, 지난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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