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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당연하다기자수첩
이다원 기자  |  dps98won@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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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3  21: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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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1994년 우리 또래 대학생들 이야기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나정이(고아라)는 쓰레기(정우)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지가 고민이고, 칠봉이(유연석)는 그런 나정이 마음을 어떻게 돌릴지가 고민이다. 윤진이(도희)는 서태지를 어떻게 볼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극 중 인물들은 다 크고 작은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 요즘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있다. 빙그레(바로)다. 조용히 생글생글 웃고만 있길래 고민 하나 없는 줄 알았건만 갑자기 휴학해 버린다.
빙그레는 확실한 게 없는 청년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본인의 기호를 알지 못한다.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의대에 진학했으나 잘 적응하지 못한다. 학교 수업도 빼먹기 일쑤다. 그의 방황은 곧 휴학으로 이어진다. 모두에게 비밀리로 휴학했는데 우연히 선배 쓰레기에게 들키게 된 빙그레. 속내를 털어놓는다.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저는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기호라는 게 없어요. 나이 스물이나 돼가지고. 한심하죠? 그동안 헛살았어요.”
몹시 뜨끔했다. 나도 한 명의 빙그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 항상 같은 칸에서 주저한다. 진로, 흥미, 특기를 적는 칸이다. 머뭇거리다가 글을 읽는 대상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지어낸다. 남들은 잘만 쓰는 것 같은데,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 싶은데 어려웠다.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한 것도 이 애매함 때문이었다. 내가 확실한 사람이라면 걸어갈 길이 보였을 텐데, 앞으로 나는 무얼 하게 될지 막막했다. 그래서 진출 분야가 넓은 학과로 왔다. 컴퓨터가 안 쓰이는 곳은 없으니 어디든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온 대학에서 학과 공부가 맞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호불호가 적은 편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동아리, 과목 선택, 대외 활동 등 대학 생활이 하나하나 나의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뭐 하나 뚜렷하지 않은 내게 뚜렷한 선택을 요구하는 게 벅찼다. 그런 나와 달리 본인의 꿈을 그려나가는 동기들을 보니 조급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랐다. 차라리 정해진 여섯 과목만 공부하면 되던 그 때가 편한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수능을 보겠다며 휴학했다.
머지않아 이 생각이 틀렸단 걸 알았다. 어차피 다른 학교 다른 학과에 다시 입학한다 하더라도 이 고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현재 내가 내린 선택에 확신을 갖고 그 곳에서 고민을 풀어나갔으면 될 건데, 지레 겁먹고 헤맸다. 나를 확실하게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에 대한 나의 태도였다. 괜히 쫄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고민 끝에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결정하는 거면 된다. 그게 나를 알아나가는 길이다.
확실하게 진로를 정하고, 기호를 아는 건 정말 매력적이다. 그만큼 스스로에 확신이 있고 잘 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꼭 지금 당장, 빠른 시일 내에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각자의 시간과 속도는 분명 다르다.
쓰레기는 고민을 털어놓은 빙그레에게 말한다. “해태도 삼천포도, 윤진이도 나정이도 다 성적 맞춰서 들어온 거지 뭐 다른 거 하고 싶어서 들어온 거 아니다. 니 나이 이제 스무살이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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