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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는 것의 필연성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최승현 기자  |  shc@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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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3  23: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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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김정현 동문

 
“도서관이 많이 바뀌었네요. 제가 다녔던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비가 그친 오후 세 시, 중앙도서관 집현전실에서 김정현 동문(국문·98)을 만났다. 편안한 옷차림과 넉넉한 웃음을 지닌 그는 푸근한 인상을 줬다.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조곤조곤한 말씨를 지녔고, 차가운 분위기보다는 부드러운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와 나눈 대화에서 체감했던 것은 그는 평론가이기 전에 학교 선배라는 사실이었다.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98학번 김정현
재학생 시절, 김정현 동문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운동권 언저리에 있었지만 앞장서지는 않았고, 문학청년이었지만 문예지는 잘 읽지 않았다. 총학생회 옆에서 기타를 튕기고 민중가요를 부르던 그는 국문과 학생이었지만 졸업이 다가와서야 ‘대산문학상’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제가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조영복 선생님 때문이에요. 당시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모아 세미나를 하셨어요. 그때 책을 많이 읽었죠. 의외로 한국 문학은 읽지 않았고 회화, 미학, 철학 등 예술 전반에 대한 책들을 읽었어요. 니체, 아도르노, 바슐라르 등 다양하게 섭렵했고요. 사실 문학과 예술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대충 읽지는 않았고, 문장을 하나, 하나씩 끊어서 읽었어요. 그렇다 보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데에는 1년이 걸렸죠. 지금 생각해보면 하드 트레이닝이었습니다. (웃음)”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었어요”
김정현 동문은 서른아홉의 나이에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학부를 마치고 서울대학교 석·박사과정을 졸업한 후였다. 더 이른 나이에 등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공부를 정립한 다음에 글을 쓰고 싶었던 그는 등단 준비가 늦었다. 당시 등단 소감에 대해서는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다만 등단은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더 이상 응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다”며 솔직한 답변과 함께 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이성복론으로 ‘문학동네’에 투고를 했었어요. 본심에 올라갔죠. 그런데 떨어졌어요. 그때 제 글은 평론이라기보다 논문에 가까운 글이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었죠. 어쨌든 첫 도전에 본심에는 올라갔으니 빨리 되겠지,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웃음) 이후에도 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 본심에 여러번 올라갔지만 다 떨어졌습니다. 결국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등단했죠.”
 
“이름 없는 자에서 이름 있는 자”가 되기까지
등단하기까지에는 4년이 걸렸다. 등단작은 『너는 이제 '미지'의 즐거움일 것이다』라는 제목의 황인찬론이었다. 포스트 미래파 시인으로 불리는 황인찬은 문단에서 주목하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미래파 시인들이 기존의 문예사조를 뒤엎고 2000년대를 장식했다면, 2010년대에는 포스트 미래파 시인들이 있었다. 김정현 동문이 비평가로서 황인찬 시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황인찬 시인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해요. 시의성 때문이죠. 황인찬은 201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에요. 2010년대 시인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 이전과는 어떻게 달라졌으며, 어떤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황인찬 시인이죠. 당시 문학장에서 황인찬 시인이 저평가되는 측면이 있었어요. 황인찬의 시가 겉으로는 가벼워 보이지만, 속에서는 대단한 자기 세계관과 감각을 갖고 있었죠. 제가 평론에서 주목하고 싶었던 점입니다.
 
“평론가가 직업이 되기에는 밥벌이가 쉽지 않아요”
평론가로서 밥벌이는 쉽지 않다. 평론가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대학에서 강사 일을 하는 것,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것, 여러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얻어내는 것이다. 김정현 동문도 다르지 않다. 그는 분기별로 매체에 3~4편씩 글을 기고하고, 인천시가 발행하는 문예지인 ‘학산문학’의 편집위원으로 일을 하며, 서울대학교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강사법으로 인해 강사 일을 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문인들끼리 만나면 문학 얘기는 잘 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먹고 살수 있을까’가 대화의 핵심 주제죠. (웃음) 서로 밥벌이 걱정하는 거예요. 그래도 혼자 살면 나름 괜찮습니다.”
 
나와 타자를 잇는 평론가
김정현 동문이 평론가로서 지닌 철학은 확고했다. 그가 쓰고 싶은 글은 이데올로기나 거대담론을 작품에 적용해 단순한 해석을 제공하는 비평이 아니었다. 나와 타자를 잇는 글, 세계와의 균열을 갖고 있는 자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숨 쉬는 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쓴다는 것의 필연성이 있어요. 글을 쓰다보면 텍스트의 심연과 제 자신의 심연이 겹쳐질 때가 찾아와요. 그 순간. 그 순간에, 텍스트 안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세계와의 불균형을 갖고 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요. 글쓰기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언어로 붙잡는 거예요. 제가 붙잡는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겠지만, 그런 순간들을 기록하고 남겨두고 싶은 거죠. 저에게 쓴다는 것의 필연성은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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