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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3  23: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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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국어국문학과 교수) 『소쉬르의 마지막 강의』 페르디낭 드 소쉬르
 
시를 읽고 가르치고 쓰면서 지금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내가 스스로에게, 시에게 물어보는 것. 언어. 일상생활의 언어와 강의실의 언어와 스마트폰의 언어가, 논문과 비평의 언어가 다르다. 그리고 시의 언어가 다르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한국어, 베트남어, 중국어, 터키어가 들린다. 우즈베키스탄 학생도 보인다. 언어는 많고, 언어활동은 다양하다. ‘나’의 언어와 ‘너’의 언어가 다르다. 그와 그녀의 언어가 다르고, 남자와 여자의 언어가 다르고, 어른과 아이의 언어가 다르다. 회사원과 군인과 법관과 수형자의 언어가 다르다. 직종마다 개별적인 언어들, 많은 언어들, 너무나 많은 언어들 속에서 나는 언어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시를 쓴다는 자가 언어를 모르고, 한국어를 모른다. 시의 언어를 모르고 시적인 언어를 모른다. 모르는 것뿐인 언어. 언어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언어는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사용하고 있는가. 개념이 먼저인가, 언어가 먼저인가. 우리가 ‘생각한다’고 할 때, 생각은 ‘무엇’으로 하는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유치한 질문이 될 수도 있지만, 근원적인 질문으로 회귀한다. 언어란 무엇인가. 다시 묻는다. 무엇인가, ‘나’의 언어는? ‘당신’의 언어는?
언어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그가 한 권의 책을 읽고 시원하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망상을 버린 사람이라면, 나는 그에게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책 『일반언어학 강의』를 권한다. 탁자에 놓여 있는 책은 2017년에 번역 출간된 세 번째 일반언어학 강의. 1910~1911년 제네바 대학, 소쉬르의 마지막 강의. 수강생 에밀 콩스탕탱(Emile Constantin)이 정성들여 필기한 노트.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한국어 판본의 제목이 『소쉬르의 마지막 강의』로 변경되었을 것이다. 원본의 제목은 󰡔『제3차 일반언어학 강의(Le troisieme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이다.
소쉬르는 언어의 다양성 안에 작동하는 ‘어떤 원칙’을 객관적인 개념으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랑그(langue), 파롤(parole), 랑가쥬(langage), 기표(signifiant), 기의(signifie).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쉬르의 개념이다. “21세기 인문학의 영원한 지적 자양분이며 인문학적 상상력의 수액” 같은 미사여구는 일반언어학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 소쉬르가 주창한 저 개념들은 고등학교 문법 시간에 시험을 위해 외우고 성적을 받은 후 망각해도 좋은 대상이 아니다. 소쉬르는 언어의 본질 개념들을 끊임없이 ‘해석’하라고 요구한다. 인식의 문을 열기 위해 질문하고 회의하라고 말한다. 규범에 해당하는 최소 원칙이자 과학적 보편성으로 수렴되는 랑그가 필수적 요소라고 하면서도, 언어의 실체는 랑그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운용하는 파롤이라고 소쉬르는 언급한다. 언어의 단일성과 다원성, 보편성과 특수성, 통시성과 공시성, 자의성과 필연성, 시스템(systeme)과 가치를 하나로 묶어낸다. 언어는 그 대극 사이의 운동이다. 대립 요소들의 관계가 부단히 변용되는 것이 언어이다. 언어의 본질에 대한 사유가 철학으로 확장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소쉬르의 언어학이 지닌 위대함이다. 나는 언어의 이원적 특성과 시의 본질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순수 언어예술인 시와 일반언어학의 상관성을 믿는다. 시는 인간과 삶에 대한 영원하고 무한한 해석이다. 되돌아간다. 언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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