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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를 기억하고 『사랑의 단상』을 생각하며 『디디의 우산』을 펴다나의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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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24  00: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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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디디의 우산』 
저자: 황정은
 
대학신문으로부터 이 원고 청탁의 카톡을 받았을 때는 추석 연휴 중이었고 약속된 과제를 마치기 위해 검토해야 하는 자료와 책들이 테이블 한가득 뒤죽박죽 어질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여받은 의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소설책인 『디디의 우산』을 읽고 있었다. 이 순간에 연락을 받았으므로, 당시 읽고 있는 책에 대해 말을 하도록 아주 옛날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 듯 느껴졌다. 아울러 어떤 생각도, 경험도, 하나의 책으로 시작되거나 종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디디의 우산』과 더불어 그 책이 내 눈앞에 도달하도록 이끈 몇 권의 책들의 소중한 궤적을 그리는 일이 아마도 그 책들에 대한, 그 책들과 함께 한 나의 시간에 대한 작은 예의일 것이다.    
이에 나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 『사랑의 단상』, 『디디의 우산』의 세 권의 책들을 빌려 말해보려 한다. 
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를 중학생 때 처음 접했다.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는 위대한 테마의 이상도 이하도 아닌, 누구나 아는 천재의 걸작 정도로 이해했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베르테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최근 우리 사회에서 격렬하게 진행된 젠더 갈등을 계기로 한다.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 최대·최악의 조합으로서 폭력과 혐오 권력, 그리고 그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저항의 물결을 대하면서, 문득 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란 오래된 질문을 떠올렸다. 더욱이 누군가를 기꺼운 죽음으로 이끄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다시 펴들은 책이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이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이 책에는 열정적인 베르테르가 로테를 향해 바치는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널리 알려진 테마 외에, 사랑에 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희열과 비극이 격렬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다가갈 수 없는 여인을 사랑하다가 광인이 된 사나이, 여주인을 연모한 나머지 욕망을 참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하인, 그리고 물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베르테르.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성범죄나 정신질환자라고 비난받아 마땅한 추악한 군상들에 해당할 텐데, 어찌하여 이들은 이토록 깊은 감동을 주는가. 지금도 나는 무엇이 사랑의 진실한 사유이고 무엇이 범죄나 질환인지 그 근원에 대해 궁금해 한다. 
『사랑의 단상』은, 지금의 나의 삶을 만들어 준 책이다. 대학 3학년 때 가을, 국내에 첫 소개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 이처럼 글을 읽고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었다. 저자 롤랑 바르트는 문예와 문화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기초를 일군 중요한 이론가다. 동성애자로 알려진 그가 환희와 절망, 열망과 불안의 아름다운 모순을 사랑에 대한 진실로서 엮는다. 물론 이 책의 주요한 레퍼런스들 중의 하나는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다. 사랑에 ‘빠져들어간’ 나는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다’고 부르짖지만, ‘견딜 수 없는’ 동요와 부인에도 불구하고, ‘격심해도 닳지 않는 그런 불행’을 지속해나갈 수밖에 없는 필연으로 나의 사랑이 말해진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시작을 열어 준 『디디의 우산』. 나는 감정이 글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 글이 몸을 지니게 된다면, 더욱이 너무나 순수하고도 지독한 슬픔이기에 아픈 몸을 가지게 된다면, 나아가 그 아픈 몸이 삶의 아름다움을 발하게 된다면, 황정은의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이 죽고 난 후, 그녀가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한 남자의 ‘하찮은’ 삶이 어떻게 다른 ‘하찮은’ 삶들과의 우정 안에서 살아지게 되는지. 지독한 가난, 고독, 질병이 사랑의 힘으로 숨 쉬는 먹먹함. 
책은 결코 홀로 있지 않다. 필시 누구와 또는 무엇과 함께 한다. 만약에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홀로의 적막감을 느낀다면, 빌 에반스가 연주하는 ‘Like someone in love’에도 귀 기울일 수 있으리라.  
여기에 활기차고 안온한 즐거움이란 없다. 대신에 고뇌와 모순과 위태로움이 빛나는 황홀을 알린다. 이래서 사랑이고, 삶이다. 바라기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아름다운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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