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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 몸은 늙어도 소년처럼, 예술가처럼 살고 싶어요”‘찐(眞) 시인’이 되고 싶은 정우신(국문·07) 동문을 만나다
박소은 기자  |  qkrthdms98@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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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8  09: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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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짧아져 금세 어두워진 6시 반, 정우신 동문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이런 인터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어색했던 분위기는 그의 재치 있는 말로 풀어지고 점점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07학번 정우신 광운대에 오기 전, 정우신 동문은 코딩을 하고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시인을 하게 됐을까? “시가 쓰고 싶어서 광운대 국어국문학과로 편입했어요. 4학년 때 국문과 장석원 교수님을 통해 시인을 만나면서 시의 매력에 더 빠져들었죠.”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 편입을 선택한 정우신 동문. 학창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사실 저는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어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과목, 싫어하는 과목이 있잖아요? 문학이나 창작 관련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다른 과목은 안 듣고 한울마당에서 얘기하면서 놀았어요.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으면 시도 더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후회되네요.” 그는 스스로 모범생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관심 있는 분야에서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색다른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은 대부분의 수업이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학생들은 의자에 앉아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다. 야외수업은 생각하기 힘들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대랑 콜라보를 한 수업이 있었어요. 누드 군상을 놓고 미대 학생들은 그림을 그리고 글 쓰는 학생들은 그 공간의 분위기나 감각들을 언어로 바꾸는 활동을 했죠. 그 수업이 가장 인상적이에요. 제가 예술 속으로 들어간 느낌? 서로 작품을 완성한 다음 작품에 대한 소개를 했죠.” 그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특색 있는 수업이 많았다고 말했다. “작품이나 영화를 보고 마음껏 이야기하는 수업도 있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미술 등의 예술을 언어로 바꿔보는 것도 재미있었죠.” 노는 것처럼 보여도 생각의 근육을 기르는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원래 등단은 제가 아니었어요” 등단을 하려면 우선 투고를 해야 한다. 신춘문예 기간에 신문사에 직접 투고하거나, 잡지사에 투고할 수 있다. 매번 다른 작품을 내야 해 많이 투고해봐야 일 년에 10번이다. 정우신 동문도 등단의 길이 쉽지 않았다. “34번 정도는 떨어진 것 같아요. 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4학년부터 거의 8년 만에 등단한 거죠. 원래 등단은 제가 아니었어요. 최종에 시 2개가 있었어요. 제 것은 거기에 없었어요. 근데 심사하는 분이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하다 뒤편에 있는 제 시를 가져왔어요.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최종 2개의 시는 잘 썼는데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대요. 제 시는 엄청 잘 쓰지는 않았는데 마음이 움직인다고 하시면서 뽑아주셨어요. 이런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웃음)” 그는 201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말한 적 없는데…” 정우신 동문에게 ‘풀’은 효자 시다. 등단을 하게 해준 시이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잡지 인터뷰에서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다는 얘기와 함께 ‘풀’의 창작 배경을 설명했다. “이 시는 28살 때 처음 썼어요. 졸업하고 아무것도 못한 상태였죠. 주변 사람들은 다 잘하는 것 같고 저는 터널 안에 있는 것 같았어요. 한 발짝만 나가면 외부라고 하지만 앞이 계속 안 보이고 눈 뜨기도 싫었어요. 침대에 계속 누워있고 약도 조금 처방받기도 하고. 그러다 ‘움직이는 것은 슬픈가 슬픈 것은 왜 움직이는가’하는 첫 구절이 탄생했죠.” 그는 힘들었던 시절을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시는 아버지 영향이 가장 커요. 아버지의 소년 시절로 돌아가 한번 써본 시예요. 저희 아버지가 16살에 상경하셔서 공장에서 일을 하셨어요. 기계에 의해 사고를 당하시기도 했죠. 눈 내리는 장면, 아버지가 상경하셨을 때의 생활, 뜨거운 여름 불같이 달궈진 철길에 있는 저와 같은 달팽이가 겹쳐졌어요.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시를 썼죠.” 정우신 시인에게 시란? 한참을 고민하다 한 마디를 내뱉었다. “뭔가 센스 있으면서 힙한 게 없네요.” 호탕한 웃음을 짓던 그는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시는 삶이다. 끝없이 모르는 것 같아요. 그냥 빨리 알아버리고 그만두고 싶은데 그게 안 되네요. 시가 뭔지 알려줄게 하는 것은 다 가짜예요. 시는 끝까지 모르는 것, 그러니까 삶이죠.” 시는 그의 삶이었고, 시를 쓰지 않으면 불안감이 들었다. “학생들도 공부하는 것을 계속 유지해야 하잖아요. 긴장감을 가지면서. 나는 오늘 유노윤호처럼 열정적으로 살았는지 반성하면서. (웃음) 저도 마찬가지로 시를 쓰지 않으면 하루 종일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불안감 같은 것이 있어요.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방치하는 느낌?” 대기업 입사까지 했지만 시가 좋아서 퇴사한 그는 시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시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공간에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음악 앨범들에서도 모든 것이 다 타이틀은 아니잖아요. 시집도 좋은 시 하나만 있으면 좋은 시집이거든요. 좋은 시를 쓰는 것은 어렵지만 좋은 시를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작권자 © 광운미디어위원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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