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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현실을 어루만지는 유머와 상상력나의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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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8  09: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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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저자 : 김애란 출판 : 창비, 2005 자료= 네이버 책 비루한 현실을 어루만지는 유머와 상상력 최승현(미디어 17) 김애란은 경쾌하다. 김애란의 문장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네 산책을 나서듯 치고 나간다. 마치 축구선수가 드리블을 펼치듯 속도감이 있고 산뜻하며 리드미컬하다. 단문과 쉼표를 자주 쓰고 명사를 종결어미로 사용함으로써 문장을 툭, 끝내기도 한다. 여기에 번뜩이는 비유와 재치있는 유머가 더해진다. 김애란의 단편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을 음미해보자. “그녀는 몸을 바싹 웅크린다. 온갖 상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한마리 공벌레 같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중에서) “산책로에서 천천히 허리를 구부려 낙엽을 줍듯, 큐마트에서 양반김이나 제주삼다수를 드는 나의 몸짓은 갑자기 우아해진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중에서) 소설 속 문장들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낸다. 독자로부터 하여금 복잡한 감정들을 이끌어 내는데 빠른 속도로 소설을 읽다가도 잠깐, 멈추어 서게 되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소설집의 표제작 「달려라, 아비」는 단연 인상적이다. 「달려라, 아비」는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 속 아버지는 어머니가 임신한 날 얼굴이 하얘져서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다. 만삭의 아내를 두고 집을 나간 남자와 집에 홀로 남아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소설 속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 부재를 스스로 채운다. 그것은 아버지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하는 일이다. ‘나’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아버지는 한없이 뜀박질을 하며 지구 곳곳을 돌고 있는 모습이다. 털 많고 여윈 다리를 가진 아버지. 분홍색 야광 반바지 입은 채, 후쿠오카를 지나, 보르네오섬을 건너,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땀을 흘리며 숨 가쁘게 달려가는 모습. ‘나’가 떠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쩐지 우스꽝스럽다. 유쾌한 상상력을 동원하는 ‘나’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에 따르면 아버지는 단 한 번, 세상에 온 힘을 다해 뛴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첫 잠자리를 갖기 직전. 아버지는 피임약을 사오겠다며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부터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미친 듯이 뛰었다. ‘나’가 ‘달리는 아비’를 상상하는 것은 어머니가 들려준 그 이야기 때문이다. 이러한 묘사 때문에 소설 속 아버지는 밉지 않다. ‘나’의 상상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지워버리고 오히려 웃음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엄격한 이미지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희화화하고 ‘아비’라는 말로 낮추어 부름으로써 아버지를 달리고, 또 달리게 만든다. 왜 작가는, 아내와 딸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향해 연민을 부여하는 것일까? 김애란은 비루한 현실을 유머와 상상력으로 위로하는 작가다. 인물의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유머로 어루만짐으로써 덜 아픈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김애란은 적절한 비율로 감정을 배합할 줄 아는 치밀한 연금술사다. 슬픈 사실을 슬프지 않게 묘사함으로써 편안한 마음으로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 끝에 마주하는 것은 교훈적인 결말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허약한 풍경이다. 슬픔을 슬퍼하지 않는, 그래서 더 슬프게 다가오는 인간의 내면은 더욱 낯설게 느껴지고 우리의 마음은 말없이 눅눅해진다. 그 따뜻한 언어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 밴다. 슬픔을 슬픔으로 소비하지 않고 유머로 치환하는 김애란의 해학은 마취약처럼 온몸에서 퍼진다. 그렇게 안착한, 몸에 밴 슬픔은 금방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오래 머문다. 몸과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어서 누군가의 아픔을 오래 기억하도록 만든다.< 저작권자 © 광운미디어위원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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