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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새로운 경험’ 왜, 흑백영화인가
김형준 기자  |  brotherjun@kw.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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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6  14: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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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네이버영화]

“완전히 새로운 경험…반드시 봐야 할 영화!”

싱가포르의 유명 감독 에릭 쿠가 남긴 영화 『기생충』 흑백판에 대한 평가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가운데 흑백판이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 봉 감독은 『기생충』 흑백판과 관련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당신은 아마도 완전히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예고하며,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개봉이 연기된 상태이긴 하지만, 국내 영화팬들 사이에서도 기대감이 증폭하고 있다.

국내에서 컬러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지 40년. 그럼에도 아직 흑백 영화는 ‘그때 그 시절’의 전유물로 남아있지 않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하면 빼놓지 않고 뽑히는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담은 영화 『동주』, 지난 2019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촬영상을 수상한 넷플릭스 영화 『로마』, 『결혼 이야기』로 오스카 레이스에서 연일 봉 감독과 수상의 영예를 다퉜던 노아 바움백 감독의 전작 『프란시스 하』까지. 흑백영화는 오늘날에도 제작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세대 불문 이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누구나 최고급 컬러 카메라를 휴대폰에 달고 다니는 시대에서, ‘흑백영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뉴트로 열풍’의 한 자락이나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콘텐츠로 보면 될까. 무엇이 제작자와 관객을 흑백으로 이끄는 것일까.

◆강렬한 대비와 질감을 위하여

   
▲ ['기생충' 흑백판의 한 장면. 자료=네이버영화]

지난 1월 30일 봉 감독은 미국 영화전문매체 ‘할리우드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고전’을 생각할 때 그것은 모두 흑백이었다”며 “만약 내 영화를 흑백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고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고전’하면 『로마의 휴일』이라든지 『대부』, 『라쇼몽』 등 흑백영화를 쉽게 떠올린다. 다만 봉 감독의 선택에는 그가 가진 고전에 대한 열망 외에도 기술적이고 의도적인 측면이 숨겨져 있었다.

봉 감독은 “영화에서 색을 제거하면 관객들은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대비를 더 강력하게 느낄 수 있다”며 대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기생충』에서 계층 간의 갈등이 그려졌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바. 온전한 흑과 백의 대비는 계층 차이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봉 감독은 ‘질감’을 강조했다. 봉 감독에 따르면 흑백영화에서는 질감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일례로 그는 ‘매우 윤기 있고 깨끗한 표면’을 가진 『기생충』 속 부잣집을 강조하며 이러한 미학적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젠 흑백으로만 존재하기에

   
▲ ['동주'의 한 장면. 자료=네이버영화]

당초 컬러영화로 개봉했던 『기생충』과 달리 『동주』는 흑백필름으로 제작됐다. 『동주』의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흑백으로 제작한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제작비 절감 효과다. 『동주』의 제작비는 5억 원. ‘동주’는 저예산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 당시 상영관을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알려졌다. 영화를 컬러로 제작할 경우 조명뿐만 아니라 색 보정이나 컴퓨터그래픽 등의 후반 작업으로 상당한 자본이 투입되는데 흑백 필름으로 작업을 하면 이 과정을 최소화하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감독에게 금전적인 효과보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의 기억 속에 윤동주 시인은 흑백으로만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 감독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 영화를 흑백으로 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준익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동주가 흑백사진 속에만 있기 때문에 흑백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우리가 아는) 윤동주의 상이 깨질 우려가 있었다”고 밝혔다. 흑백사진 속에서 짧은 머리를 하고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고고한 시인. 흑백영화 『동주』는 그를 지키기 위한 이 감독의 선택이었다.

◆흑백영화의 인기, 어떻게 체험할 것인가

흑백에 향수를 느끼는 세대 밖에도 젊은 세대에게도 흑백영화는 인기다. 우리 학교에서 ‘영화의 이해’ 과목을 강의하고 있는 인제니움학부대학 김서영 교수는 “(흑백영화는) 지금까지 집중하지 않았던 차원을 드러낼 수 있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자극이 점차 강해지는 요즘, ‘집중’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김 교수는 수만 가지 질감을 가진 검은색을 통해 색채 자극을 줄임으로써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부조처럼 드러나 그것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세대가 흑백영화를 새롭게 느끼는 이유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영화는 개인의 삶 속에서 운명같이 만나게 되는 사건이며 그 속에서 진짜 재미와 효과가 나타난다”며 “흑백영화를 어떻게 체험하는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주의와 집중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재미도 효과도 주지 못한다. 운명처럼 만난 흑백영화의 감성과 효과를 느끼고 흑과 백으로 원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한 창작자의 치열한 고민을 개인의 삶 속에서 하나의 중요한 체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전염병의 여파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 하루쯤은 우리를 둘러싼 컬러의 자극을 뒤로하고 흑백영화의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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